동업한 지 51년. 창업주들간 역사는 76년이다. 그 역사는 23일 저물게 된다. 적어도 심리적으론 그렇다. 이날 최윤범 회장과 영풍은 고려토토 축구의 경영권을 두고 임시주주총회에서 일전을 겨룬다. 영풍은 지난해 9월 MBK파트너스(이하 MBK)를 끌어들이며 싸움을 키웠다. 영풍은 갖고 있던 지분의 절반을 MBK에 넘겼다. 영풍 측은 “고려토토 축구 경영 정상화”를 명분으로 삼았다. “스스로 팔을 자르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누가 이기든, 동업을 끝낸 회사는 새로운 길에 접어든다. 특히 고려토토 축구은 비(非)중국 공급망의 선봉에서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양측에서 내놓은 거버넌스 개선안을 도입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자칫 국내 재계에서 걱정하는 ‘대리인 문제’가 벌어질지 모른다.
최윤범 토토 축구은 주총이 끝난 뒤 “우선 울산에 빨리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문상덕 기자mosadu@fortunekorea.co.kr 사진김용호
동업을 이어가는선택지는 없었을까? “고민하지 않은 건 아니다”, 최 토토 축구은 잠시 뜸을 두고 말했다. 하지만 양사가 경영 방식에서 “양립 불가능한, 본질적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50주년을 맞아 최 회장은 신사업 구상인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밝혔다. ▲신재생에너지 및 그린수소 ▲자원순환 ▲2차전지 소재 사업을 세 가지 화살로 삼았다. 최 회장은 적어도 사장직에 오른 무렵부터는 이들 사업을 챙겼다. 최 회장은 이들 모두를 제련 사업의 연장으로 설명했다. 값싼 전력이 필요해 신재생발전을, 자원 회수율을 높이다 보니 재활용 경쟁력도 갖게 됐다. 양극재 소재인 니켈은 토토 축구과 제련 공정이 유사했다.
고려토토 축구은 여러 형태의 원료를 하나의 노(爐)에 녹여서 토토 축구, 동 등 여러 금속을 동시에 얻어내는 데 능하다. 또 부산물에서 다시 금속을 회수해 효율을 높인다. 최 회장은 “자체 광산이 없고, 폐기물을 적재할 땅이 없었기에 갈고닦은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일석이조’ 효율을 찾는 장기는 우호 지분을 늘리는 데도 썼다. 최 회장은 트로이카 드라이브 협업을 지렛대로 한화와 현대차, LG화학이 지분을 갖도록 했다. 세 회사가 지닌 고려토토 축구 지분은 최 회장이 영풍그룹에서 독립하는 데 종잣돈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독립이 쉽진 않았다. 최 토토 축구은 난데없는 유상증자 무리수를 뒀다. 성공했다면, 영풍·MBK 지분은 줄고, 우리사주는 늘었다. 하지만 위법 논란이 일면서 2주 만에 철회했다. 그는 “전략적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절차적 실수는 아니라는 것.
무리수를 뒤집기 위해 승부수를 뒀다. 이사회 의장을 외부 전문가인 사외이사에게 맡긴다. 지금까진 토토 축구이 겸직했다. 또 소액주주 보호 장치를 도입한다. 적은 지분으로 강한 의결권을 행사케 하는집중투표제(※설명은 토토 축구 하단 참조)가 핵심이다. 1998년 상법 개정으로 도입한 제도지만, 이를 정관에 삽입한 국내 회사는 극히 적다(2023년 기준 5%, 삼일PwC 집계). 개선안이 관철되면, 고려아연은 한국 대기업의 거버넌스 모범 사례가 된다. 오너가 회장과 이사회 의장을 모두 ‘chairman’으로 번역해야 하는 한국적 혼란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승부수는 ‘주주 권익 강화가 장기적 의사결정을 망친다’는 국내 대기업들의 걱정을 넘어서야 한다. 그 역시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우려”라고 공감했다.
사모펀드 업계를 향해선 “비즈니스 하는 사람을 리스펙트(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사를 팔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경영은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거버넌스 승부수
주총을 앞두고 의결권 자문사들에서 입장을 냈다. 현상 유지. 현 경영진이 이사회 다수를 점하는 구성을 권고했다.ISS 보고서가 나온 10일, 그는 한결 가뿐한 목소리로 답했다.
Q 영풍과 협업을 이어가는 선택지는 없었나?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누구도 정답을 갖고 있진 않을 거다.
영풍의 경영 방식, 특히 고려토토 축구의 방향을 두고 저희와 영풍 사이엔 “irreconcilable(양립 불가능한), fundamental difference(본질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제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면, 언젠가는 지금보다 쉽게, 지금과 같은 행동을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의 그분들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점에 별안간 계기가 있어서 그분들의 신념 체계가 바뀌었다고 보지 않는다.
Q 본업과 무관한 투자를 한 것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안 맞는다는 지적이 있다.
본업과 연관성을 따져 한 투자가 아니다. 재무적인 투자였다. 그 당시 회사가 2조 원이 넘는 돈을 굴리고 있었다. 그런데 수익률이 2%가 안 됐다. 대단히 안전하게 운용하고 있었다. 위험 부담을 조금 더 하더라도 수익률을 높여보자는 결정을 함께했다. 충분히 비즈니스적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상품에 투자했을 것이고, 잘 안된 것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토토 축구 등 비철금속 제련과 무관하기 때문에 부적절한 투자라는 지적에는 솔직히 “fundamentally disagree” 한다. 2조 원 넘는 돈을 토토 축구에 전부 투자하긴 어렵다. 그리고 각 투자상품에 1000억 원 혹은 그 미만으로 투자했다.
절차적으로 볼 때 이사회 승인 사안이 아니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수익을 내고 있다. 회수를 가정했을 때 그렇다. 상대측에서 회계장부상 숫자를 악용하는 측면이 있다. IFRS(국제회계기준)상 투자 관련 회계처리를 할 때 “Impairment(손상차손, 자산의 회수 가능액이 장부금액보다 낮을 경우 그 차액만큼 자산의 가치를 손실로 인식하는 것)”는 반영할 수 있다. 하지만 투자금을 회수하지 않는 한 “Appreciation(가치 상승)”은 반영할 수 없다. 그런데 장부상 가치만 볼 때 마치 손해를 본 것처럼 이야기하는 측면이 있다. 불행한 일이다.
Q 고려토토 축구은 이전부터 배당 성향이 강했다. 국내 제조업치곤 이례적이다. 이유가 있나?
2014~2015년부터 어렴풋이 영풍과 우리의 비즈니스 스타일이 다르다고 인식했다. 당시 우리는 20%가량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18%다. 이만한 지분만으로 경영할 순 없다. 모든 주주와 스테이크홀더의 동의를 구하면서 경영해야 한다. 우리가 배당을 줄였다면 영풍이 힘들어졌을 거다. 하지만 그러면 주주들을 배신하게 된다. 주주를 존중하면서 가는 게 정도(正道)다. 그리고 우리도 주주니까 배당받으면 좋다.
Q 유상증자 시도, 집중투표제 등 국면에서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들었다. 실상은 경영권 방어 목적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수는 다 주주들을 위한 수다. 그래야 제가 이기는 길이 생긴다. 고려토토 축구의 가장 큰 장점은 주주들의 이익과 현 경영진의 이익이 일치한다는 점이라고 본다. 반대로 영풍과 MBK는 주주들의 이익과 상충할 가능성이 높다.
Q 의도의 순수함보다는 이익의 일치를 말한다.
모든 결정은 단 하나의 이유로 나오지 않는다. 순수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데 대해선 입장이 없다. 그렇게 문제제기 하는 분들이 순수하게 일 해온 것도 아니지 않느냐.
집중투표제를 적용하면 누구나 자신의 주식 수만큼 표를 받는다. 그게 왜 본인에게 이득이 안 되나? 살펴보면, 결국 힘이 작은 주주들이 이 제도로 말미암아 현 경영진을 지지하면 본인에게 결과적으로 좋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Q 유상증자 철회 후 거버넌스 혁신안을 내놨다.
아주 간단하게 결정한 것들이다. 우리가 승리하려면 제3자인 투자자분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사업 잘하는 건 기본이다. 집중투표제는 국민연금에서 공개적으로 찬성한다고 말씀했다. 소액 주주들도 좋아할 만한 제도다. 그리고 액면 분할, 의장직 사임 등 여러 가지 안들을 두고 문제가 없거나 조정 가능하면 ‘오케이, 하자’고 결정했다.
Q 재계에선 주주 권리를 강화하면 기업이 단기 이익에 집착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런 우려는 당연히 있을 것 같다.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MBK 같은 분들이 회사를 경영하게 되는 경우다. 그분들이 양보해서 10년간 회사를 안 팔겠다고 했지만, 적어도 20년, 30년은 내다보면서 사업을 구상해야 한다. MBK는 태생적인 문제, 다시 말해 LP에 대한 의무가 있기 때문에 심한 대리인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집중투표제 등 제도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수익도 잘 내고, 장기 비전도 잘 갖춰야 하는 게 경영진의 숙제다.
회사를 팔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경영은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진다.
Q 산업계와 사모펀드의 바람직한 관계는 무엇일까?
이번 일을 겪어 보니, 적대적 인수합병은 굉장히 어려운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분들이 고려토토 축구을 장악했다고 치자. 그러면 지난 백 일 동안 고려토토 축구의 모든 직원을 적대시하다가 DAY1부터 그들을 이끌어야 한다. 경영이 쉽지 않을 거다.
사모펀드의 순기능은 당연히 있다. 비즈니스를 조금 더 빠르게, 수익성 있게, 산업 친화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1980년대 사모펀드가 한국에 처음 들어올 때는 산업계와 경영 철학에서 의견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차이가 현격히 줄었다. 그렇다면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 리스펙트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회사를 팔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경영은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진다. ‘제가 이 회사를 열심히 경영할 것이고, 정직하게 경영할 것이다. 팔 생각 없이 계속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 사람을 리스펙트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이번 분쟁을 통해 겪은 변화가 있다면.
변화가 없을 수는 없겠다. 경영자로서 상당히 괴롭지만 유익한 기회다.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생각해 볼 기회였다. 예를 들어 제가 의장을 맡는 게 중요할까? 생각해 보니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집중투표제를 했더니 생각지 못한 사람이 이사회에 들어와서 다른 의견을 낸다? 오히려 좋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제가 주식이 하나도 없어도, 회사를 위해서 일할 수 있다면 저는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이 아니라면 저 자신에 대한 질문을 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최윤범 고려토토 축구 회장②]’ 인터뷰에서 이어집니다.)
집중투표제각 주주가 1주마다 ‘선임할 전체 이사의 수’만큼의 표를 지니는 제도. 원하는 이사 후보에 표를 집중해서 행사할 수 있다. 단순투표제에선 ‘A이사 선임에 대한 찬반 투표’ 식으로 순차 의결하기 때문에 소액주주에게 불리하다. 삼일PwC에 따르면, 2023년 자산 1조 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 중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비율은 5% 미만이었다.
1월 23일 임시주총의 핵심 안건은 이사 선임이다.
우선 이사회는 이사 수 상한 설정(최대 19명)을 안건으로 올렸다. 후보자가 모두 선임될 경우(경영진은 7명, 영풍·MBK 측은 14명) 이사회가 비대해진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현재 이사회 총원 중 장형진 영풍 고문을 제외한 12명은 현 경영진 측 인사로 여겨진다.
최 토토 축구은 영풍·MBK 측 추천 이사를 일부 선임해야 한다는 권고에 대해 “납득할 만하다”며 “현 경영진이 잘하고 있지만, 상대방도 지분을 40%가량 갖고 있으니 이사진 구성을 더욱 다양하게 하면 좋겠다는 뜻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17일 국민연금은 최 토토 축구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연금은 양측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지분(4.51%)을 갖고 있다. 국민연금은 집중투표제와 이사수 상한 모두에 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