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선 공약으로 주 슬롯 잭팟제와 주 4.5일제 정책이 정면 충돌하고 있다.
![직장인들이 아침 출근에 분주한 모습. [사진=뉴시스]](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504/47887_40971_723.jpg)
금요일부터 토·일 휴무. 차기 정부에서는 정말 일주일에 슬롯 잭팟만 일할 수 있게 될까. 6·3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떠오른 주 슬롯 잭팟제'를 놓고 실현 가능성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시작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불을 지폈다. 지난 2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창의와 자율의 첨단기술사회로 가려면 노동시간을 줄이고 '주 4.5일제'를 거쳐 '주 슬롯 잭팟 근무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인공지능(AI)과 신기술로 인한 생산성 향상으로 자연스레 근로 시간 단축으로 이어져야 한다면서다.
이후 당 차원의 발 빠른 후속 조치가 이어졌다. 지난달 12일 민주당은 '20대 민생 의제 60대 정책과제'를 발표하며 주 슬롯 잭팟제의 단기적 도입을 명문화했다. 현행 주 52시간 근무 시간을 48시간으로 단축하겠다고도 했다. 당 지도부는 벨기에 모델을 언급하며 "근로자가 주 슬롯 잭팟(1일 9시간 근무) 일할지, 주 5일(1일 7시간) 일할지 선택할 수 있도록 추진 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당 김동연 후보는 한발 더 나아가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난 17일 김 후보는 노동 공약과 관련해 "법률·지원 로드맵을 수립하고 공공·민간 부문에서 다양한 주 슬롯 잭팟제 시범 사업을 지원하겠다"며 공식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은 즉각 반발했다. 야권발 주 슬롯 잭팟제를 두고 "망언"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국민의힘은 21대 대선 첫 공약으로 '주 4.5일제'와 '주 52시간 폐지'를 내세웠다. 총근로시간(주 40시간)은 그대로 둔 채, 월~목요일까지 1시간씩 더 일한다(1일 9시간). 대신에금요일에 오전만(4시간) 일하자는 게 핵심 골자이다. 노동 시간을 놓고 민주당이 실질적인 '단축'을 강조했다면, 국민의힘은 '유연 근무'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주 4.5일제 유연근무는 총 근무시간이 줄지 않기 때문에 급여에도 변동이 없는 워라밸을 위한 현실적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들은 아직 공식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고 있다. 다만 주요 후보들은 그동안 현실 가능성을 이유로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김문수 후보는 지난 2월 국회 방문길에 "주 슬롯 잭팟제, 4.5일제를 법제화한다면 국민과 경제, 젊은이들의 일자리에 도움이 되겠냐"며 회의적인 의견을 내놨다. 심지어 홍준표 후보는 당 공약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동시에 "획일적인 주 52시간제의 예외를 늘리고 유연성을 갖게 하겠다"고 했다.
안철수 후보는 주 슬롯 잭팟제 보다는 "유연 근무를 확대하겠다"고 했고, 한동훈 후보는 "공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자"며 구체적인 찬반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노동·시민사회단체가 22대 총선을 앞두고 '주 4일제 총선공약 채택 촉구'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https://cdn.fortunekorea.co.kr/news/photo/202504/47887_40972_1045.jpg)
1시간이라도 쉬는 시간이 간절한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주 슬롯 잭팟제든, 주 4.5일제든 뭐라도 실현 해달라"며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이다. 23일 양대 노총도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을 향해 주 슬롯 잭팟제 도입을 핵심 정책 요구에 나섰다.
문제는 임금이다. '일한 만큼 받는다'라는 노동 대원칙을 감안할 때, 직장인들의 월급은 어떻게 재설정되느냐이다. 당장 경영계는 비용 부담을 이유로 민주당의 주 슬롯 잭팟제는 "수용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임금은 종전과 같이 그대로인데 절대적인 근로시간만 단축(4시간) 한다면, 월급 주는 기업은 제 자리에서 '손해'보는 격이기 때문이다.
보수 정당의 주 4.5일제를 놓고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온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직원들이 금요일 오후 근무하게 된다면, 추가 연장근로수당 지급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 역시 기업 입장에서 부담이 든다는 뜻이다. 경영계가 민주당안도, 국민의힘안도 내키지 않아 하는 이유이다.
지난 15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김문수 후보와의 차담에서 "주 슬롯 잭팟제나 4.5일제를 시행했을 때 모든 업종, 모든 기업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법률은 지금의 현실에 맞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 아이슬란드는 주 슬롯 잭팟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로 꼽힌다. 2015년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2020년부터는 산업 전체로 주 슬롯 잭팟제를 확대해 시범 적용하고 있기도 하다. 전체 임금 근로자 중 50% 이상이 임금 삭감 없이 주 36시간을 근무하고 있다.
영국, 스코틀랜드, 벨기에 정부와 바티칸도 2022년부터 주 슬롯 잭팟 근무제를 실험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대체로 근로시간(주 38시간)이 줄어들기보다는 근로자의 선택적으로 근로 시간을 조정하는 차원이다.
영국 싱크탱크 오토노미가 발표한 주4 일제 실험 데이터에 따르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사업체 규모에 상관없이 대부분 높은 만족도를 보였다. 특히 기업의 성과 증가가 눈에 띈다. 주 슬롯 잭팟제 실험에 참여한 기업의 경우 매출액과 수입은 오히려 전년 대비 35%나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오토노미 수석 연구원은 "직원들의 이직을 비롯해 휴가 및 병가 사용이 줄어든 게 가장 큰 이유였다"면서"인력 유출의 감소로그만큼 신규 채용에 투입되는 비용이 줄어들어기업 이익으로 돌아 왔다"고 평가했다.
김나윤 기자 abc123@fortunekore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