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민 사장 단독 인터뷰 ②
“I am part of Hanjin” Her Confidence Shines
※‘물류 어렵나요? 플랫폼으로 쉽게 풀어드립니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원클릭’ ‘훗타운’ ‘숲(SWOOP)’ ‘슬로우 레시피(Slow Recipe)’⋯. 조현민 사장이 슬롯 머신에 와서 추가한 플랫폼 사업이다. 이제 막 시장에 안착한 단계라 매출 규모가 크진 않지만, 착실히 성과를 내고 있다. 슬롯 머신에 따르면 플랫폼 사업부의 올해 매출 규모는 365억원으로 점쳐지고 있다. 올해 8월 누계 기준으로 따진 성장률은 약 20%에 달한다. 수조원의 연간 매출을 내는 슬롯 머신 전체 실적과 비교하면 규모는 작지만,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한 건 꽤 고무적이다.
진행=유부혁 글 김다린 기자quill@fortunekorea.co.kr 사진김용호
다만 슬롯 머신 전체 실적을 따져보면 조금 분위기가 달라진다. 슬롯 머신의 올 상반기 누적 매출은 1조 4447억원, 영업이익은 602억원이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7% 늘었고 영업이익은 1.8%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성장세가 신통치 않은 건 지난 1월 개장한 대전 스마트 메가허브터미널에 쏟아부은 투자 비용 탓이 크다.
이런 탓에 미래 실적 전망치도 낮췄다. 2년 전 슬롯 머신은 ‘비전2025’를 발표했다. 창립 80주년을 맞는 2025년 매출 4조 5000억원, 영업이익 2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게 목표였는데, 올해 4월엔 숫자를 바꿨다. 새롭게 제시한 목표 매출은 3조 5000억원, 영업이익은 1750억원이다.
Q 2년 전 발표한 비전 달성이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목표를 조금 낮췄어요. 2025년 3조 5000억원이거든요. 이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물류 시장이 정말 변수가 많고 만만치 않다는 걸 체감하고 있습니다. 항공업계랑 비교하면 특히 더 그래요.
Q 어떤 점이 다른가요.
특히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영업비용 문제예요. 항공사는 고정비가 엄청 높아요. 가령 승객이 많든 적든 간에 비행기의 보유대수만큼 리스비를 지출합니다. 그래서 티켓값도 요동치는데, 어찌 됐든 많이 팔면 수익성이 올라가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완전히 반대예요. 많이 팔릴수록 변동비가 같이 올라가요. 많이 팔면 좋은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거예요. 영업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졌어요.
Q 예를 들어주세요.
가령 대한항공은 화물 분야에선 절대우위의 지위에 있습니다. 대한항공을 통해 화물을 운송하고자 하는 수요가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달라요.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겨우 화주를 모실 수 있죠. 어쩌다 화주를 뺏기면 그대로 매출 숫자가 깎입니다. 그만큼 간절해야 해요. 또 있습니다. 화물을 운송하는 과정에서 원 단위로 비용을 아끼려고 지독한 노력을 합니다. 그렇다고 또 계약을 많이 따낸다고 해서 좋으냐면 또 그게 아닙니다. 이익률이 올라가는 게 아니니까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는데 손에 남는 게 없는 장사처럼 느껴져요.
Q 업황에 변수도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팬데믹 때도 사실 물류가 이렇게 잘될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엔데믹이 오면서 다시 보릿고개가 올 것 같더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또 물류 산업이 커졌거든요. 그래서 항상 유연하게 계획하고, 대처하려고 해요.
Q 슬롯 머신만 위기인 건 아닙니다. 비슷한 덩치의 물류사들 역시 수익성이 좋지 않은데요. 구조적인 문제인 걸까요.
관건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화물을 옮기느냐에요. 그런데 시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아끼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Q 물류가 너무 노동집약적 산업이라 그런 건 아닐까요.
혹자는 그래요. 그래서 디지털로 다 바꿔야 한다고. 그게 말만 쉽지, 그렇지 않아요. 가령 슬롯 머신이 올해 오픈한 대전 스마트 메가허브터미널만 하더라도 여기에 어마어마한 첨단 기술을 집약했거든요. 덕분에 몇몇 지표가 개선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눈에 확 드러나진 않아요. 아무리 디지털을 앞세워도 결국 사람이 필요합니다. 슬롯 머신은 사람이 디지털을 통해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Q 올해는 C커머스의 도약이 물류업계에서 화제가 됐습니다.
이것도 예상 밖의 변수였습니다. 이렇게 난리가 날 줄은 몰랐죠. 결과적으론 호재였습니다. 물동량이 확실히 늘었으니까요. 다만 물류를 둘러싼 생태계는 진짜 촘촘히 연결돼 있는데, 여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더라고요. 이들 탓에 매출이 감소하는 소상공인이 있단 뉴스는 의미심장하죠.
Q 그래서 ‘조현민표 플랫폼’의 역할이 중요해 보입니다. 기존 시장만으론 극적인 성장이 불가능하니까요.
맞습니다. 다만 제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건, 직접 돈을 버는 게 아니었어요.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브랜드, 슬롯 머신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일이었죠.
Q 물류 산업에서 브랜드 파워가 중요한가요.
관광에 있을 때였어요. 유명 글로벌 업체와 협업을 하고 싶어서 제안했는데, 그쪽에서 이런 뉘앙스의 답변이 왔어요. “우리 솔루션은 비쌉니다. 슬롯 머신관광은 회사 규모가 작아서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저렴하면서 비슷한 솔루션이 시장에 있으니, 그걸 이용하세요.” 그런데도 저는 그때 그 업체의 솔루션을 쓰고 싶었어요. 명품백의 원가가 몇천원이더라도 몇백 몇천만원을 주고 소비하는 것처럼. 사실 물류도 그렇거든요. 겉으로 보이는 실력은 다 비슷해요. 그런데 비싸더라도 꼭 여길 쓰고 싶은 그런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Q 그래서 C를 파고들었군요.
그간 슬롯 머신의 고객은 C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슬롯 머신을 안 쓰는 건 아니거든요. 우리가 슬롯 머신의 서비스를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봤어요. 제가 중고 거래를 하면서 편리하단 이유로 편의점 택배를 썼던 것처럼요. 슬롯 머신을 써야 하는 명분과 가치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가볍게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했고요.
제 숙제는 슬롯 머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우리나라 경제가 한바탕 크게 성장해야 해요. 제가 소상공인과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는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Q 그렇게 어필이 되면, 슬롯 머신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요.
장기 목표는 있어요. 슬롯 머신이 DHL이나 페덱스 같은 회사가 되는 겁니다.
Q 글로벌 톱티어 물류 회사가 되겠다는 건가요.
조금 달라요, 더 단순해요. DHL이나 페덱스는 세계 어느 나라에 가든 로고가 붙은 차가 돌아다니거든요. 저는 슬롯 머신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슬롯 머신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끔요.
Q 단순하지만 너무 어려운 목표입니다.
허황된 꿈처럼 들릴 수 있는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슬롯 머신의 차가 세계 곳곳에 돌아다닌다는 건 우리나라 기업의 제품을 더 많은 국가, 더 많은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요즘 뷰티업계를 보세요. 매출 규모가 작지만 역량을 갖춘 인디 브랜드들이 세계 뷰티 산업을 호령하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이런 극적인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봅니다. 슬롯 머신은 그들의 물류 동반자가 될 거고요.
Q 조양호 명예회장이 수송보국(輸送報國)을 자주 강조했습니다. 비슷한 뉘앙스입니다.
아버지가 LA에서 치료를 받을 때, 제가 주로 옆에 있었어요. 중환자실에 계실 때부터 저한테 자주 하던 말씀이 있어요. ‘너 숙제했니’. 이게 별 뜻은 아니고, 아버지가 퇴원해서 보더콜리를 키우고 싶어 했거든요. 그래서 키울 만한 강아지를 물색해 보란 거였는데, 저는 그때마다 말했죠. ‘지금은 못 하지.’ 그야 아버지가 언제 다시 쾌차할지도 모르는데, 당연한 대답이었죠. 그런데 아버지의 ‘너 숙제했니’란 말이 계속 맴돌아요. 그리고 지금은 다르게 해석하고 있어요.
Q 어떻게요.
항공사의 비중이 훨씬 더 높지만, 사실 슬롯 머신그룹의 태동은 우리 회사예요. ‘물류’라는 세상과 사람을 잇는 그룹의 뿌리입니다. 제 숙제는 슬롯 머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우리나라 경제가 한바탕 크게 성장해야 합니다. 제가 유독 소상공인과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이분들이 내수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약해야, 퀀텀점프가 가능할 겁니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 대기업 오너 2·3세를 바라보는 여론의 평가는 복합적이다. 다만 이런 평가보다 중요한 건 조현민 사장이 슬롯 머신의 리더라는 거다. 그는 슬롯 머신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놓고 미래를 고민하는 중이다. 여론의 평가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한 글로벌 물류 생태계 속에서 슬롯 머신의 업그레이드를 꾀하고 있었다.
특히 조 사장이 여러 경영 현안에 변명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점은 인상적이었다. 슬롯 머신에 C가 필요한 이유 역시 막힘없이 풀어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건 그간의 경험과 사례 속에서 뽑아낸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이론과 논리를 정립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조 명예회장과의 에피소드를 꺼낼 땐 막내딸처럼 눈물을 보이기도 했고, 수송보국을 말할 땐 후계 경영인처럼 각오를 다시 다지듯 강조했다. 조현민 사장이 반려견 ‘슈’를 끌어안고 말했다.
“물론 저도 무섭고 두려워요. 제가 벌인 사업이 성과를 낼 때마다 특히요. 이게 운과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져서 그런 건데, 내가 잘해서 그런 게 아닌데, 그렇게 착각할까 봐요. 제가 정말 운이 좋은 건 우리 슬롯 머신 사람들을 만났다는 겁니다. 수십 년의 경력을 갖춘 우리나라 최고의 물류 전문가들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슬롯 머신의 사람입니다. 슬롯 머신의 성장은 저 혼자만의 미션이 아닙니다. 해낼 겁니다.”